왜 지금 ‘화천민속’인가
보리고개와 함께 떠오르는 화전(火田)은 일찍 백전(白田)이라 불릴 정도로 산간농법인데 1980년대 이후 점차 소멸되었다. 희미한 옛사진이 되었다. 기억 저편에 남았다. 조림 정책과 안보 차원에서 화전 독가촌(獨家村)이 정리되면서 화전농의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정부에 의해 주도된 이른바 화전 정리 사업인데 주로 1973~1975년에 이루어졌다. 일방적인 정리과정에서 기초조사가 충실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뚜렷하게 체계화하려는 노력이 적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라진 민속문화유산이 되었다.
광복 후 화전농경에 기반을 둔 산촌의 변화는 크게 국가 정책으로서 화전정리사업과 농업의 시장경제체제로의 편입이라는 거시적 사회변동요인과 관련이 있다. 두 요인에 의해 조사지역 산촌 사람들은 삶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전략으로서 현재의 특화된 상품작물 재배 농업으로의 변모를 도모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화전의 또다른 생태적 이미지는 산촌체험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생태마을 만들기가 그것이다 필자는 충청북도 북부지역 제천․단양 산간민속의 활인성(活人性)에 일찍 주목한 바 있다. 이창식, 《단양지역의 죽령국행제》(2002)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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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숙전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긴 했으나, 여전히 화전농업의 전통적 특성을 간직한 생업활동이 성행하던 1960년대 초반까지의 시기에는 농경방식이나 산지를 이용하던 양상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 화전정리사업이 진행되면서 이곳 사람들은 과도기의 상황을 거치게 되는데, 이는 전통적인 곡물생산에 무게중심을 두는 농업방식에서 환금성을 지닌 새로운 작물의 선택과 판매라는 방식을 채택하는 분기점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중요한 토지기반이었던 옛 화전지를 버리지 않고 농사철에 따라 새로 정착한 마을과 경작지를 오가며 거주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농업 생산활동을 계속하였다
유 지 상 시인 작가
* 충북 제천 청풍 1951출생
* 대현상사(자영1978~87년)
* 태양건설(주)전무이사1989~1997년,
* 금호건설(주)대표이사 전
* 뉴인프라(주) 대표이사 전
* 국사편찬지역사료조사위원1990~(현)연임
* 소백산국립공원.문화재위원(현)
* 단양문학회 1998~2004년회원,
* 충북문학회2000~2008년감사
* 제천문학회2004~2022년 현고문
* 시인 이력=월간 문학공간 신인상 시인 등단(1998년) 첫 시집 1999년
* 창넓은 집(서문,조병화시인 당시 한국에술원장) 시평 최광호 주간
* 공저 한강외 다수 원광문예지 2000년 교무 시 2013년
서울 원음 합창단 발표됨 고은 시인과 함께
유트브 https://youtu.be/Sa5A91VwOUo
민들레다래동산.사인안.들고양이
트롯트 당신은 내사랑이요 작사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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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 의 누정...........................................................유페이퍼
역사을 알고 여행하자...............................................유페이퍼